아침 일찍 서둘러 1차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갔다. 서늘하고 쾌적한 10월의 날씨가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를 떠올리게 했다. 높고 푸른 하늘, 청군, 백군, 단체무용, 400미터 계주, 김밥, 도시락과 사이다, 줄다리기,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 오제미로 박 터트리기. EJ가 용산역에 도착했다고 내 손을 두 번 꽉 조였다.
용산역은 내가 기억하는 용산역과는 완전히 달랐다. 크기가 웅장하고 건물 디자인도 멋있었으며, 깨끗하기까지 했다. 시계를 보니 출발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아침을 거르고 나온 터라 역사 안에 있는 작은 김밥집에 들어가 김밥, 어묵, 커피를 주문했다. 김밥을 만드시는 분의 손놀림은 절도가 있으면서도 빨랐다. 김밥과 어묵 모두 꿀맛이었다. 역시 한국에 오면 미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런 소소한 기쁨이 있어 좋다.
ITX 청춘열차는 목적지인 가평을 향해 천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오늘은 가평에 있는 남이섬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간다.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TV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남이섬을 가볼 기회가 없었다. 어릴 적 읽었던 남이장군 위인전이 생각났다. 무예에 뛰어나 미소년 시절에 무과에 급제하고, 명궁으로 중국에서도 이름을 알리며 초고속 승진으로 최연소 병조판서까지 되었지만, 유자광의 모함 때문에 효수를 당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이섬의 남이장군묘는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가평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정도의 거리에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이 있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에서 다음 페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 대략 절반 이상이 외국인들이었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페리와 짚라인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당연히 페리를 타기로 했다. Cape Cod의 Martha’s Vineyard에 갈 때에도 페리를 타고 40분 정도 들어갔던 기억이 있는데, 남이섬 페리는 5분 정도로 상당히 짧았다.
섬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섬 입구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조금 번잡스러웠지만, 계속 걷다 보니 여유롭게 섬의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다. 섬 오른쪽 물가를 시작으로 섬을 거의 한 바퀴 돌았을 무렵,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사랑하는 남녀 주인공이 눈사람을 만들었던 장소를 발견했다. EJ와 나는 비슷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개그맨들이 패러디를 많이 해서 마치 내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후 3시쯤 허기가 느껴져 남이섬을 떠나는 페리를 탔다. 아침에 먹었던 김밥과 어묵이 뱃속에 아직까지 남아있을리 없다.
우리가 가려고 계획한 닭갈비 식당이 아직 브레이크 타임이라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꽤 넓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의 카페였다. EJ가 설빙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하나를 주문했는데 가격이 만원 정도였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맛이 너무 좋아서 아깝지 않았다. 우유를 얼려서 갈아 만든 듯한 빙수에 여러 가지 과일, 단팥, 찹쌀떡, 콩가루가 어우러져 우리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 주었다.
저녁 시간에 첫 번째 손님으로 다시 닭갈비 식당을 찾았다. 넓은 실내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이곳은 레스토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두 가지 닭갈비를 주문해 깔끔하게 먹어 치웠고, 역시 맛있었다. 인터넷 리뷰를 보니 이 레스토랑의 닭갈비는 전통적인 닭갈비와는 다르다고 했다. 어쨌든 맛있었다. 가격은 육만 오천 원 정도였다.
EJ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용산역행 ITX 청춘열차는 어둑해진 저녁을 달리고 있다. 오늘도 재미있는 하루였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세어보니 오늘이 많이 아쉬울 것 같아 다시 한 번 더 세어 보았다.
다음 Part 4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