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여행2023 가을 3주간 한국여행 Part 4

2023 가을 3주간 한국여행 Part 4

앞좌석의 젊은 커플이 소곤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EJ가 전주에 거의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KTX 호남선은 한적했지만, 군데군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전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듯, 남자아이들이 짐을 챙기며 분주해 보였다. 나도 그 남자아이들처럼 주섬주섬 배낭과 작은 캐리어를 손에 쥐었다.

전주역은 서울역이나 용산역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우선 크기에서 차이가 있었고, 무엇보다 한옥 같은 느낌을 주는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호남지방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도착하자마자 GoPro를 켜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메모리 카드에 담고 싶었다. 혹시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의심하며 구석구석을 찍었다(사실 2024년 가을에 또 왔다 🙂).

택시를 타고 가장 유명한 전주 비빔밥 식당으로 향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처음 맛보게 될 전주 비빔밥이 무척 기대되었다. 역시 인기 있는 맛집인 만큼 번호를 받아 조금 기다려야 했다. 얼마 후 우리는 자리에 앉아 전주 비빔밥, 돌솥 비빔밥과 파전을 주문했다. 어떤 유튜버의 영상에서는 반찬 종류가 식탁 가득 나오던데, 아마도 이 식당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반찬은, 나물, 버섯, 장아찌, 배추김치, 그리고 맑은 콩나물국 정도였고 섬섬한 맛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전주 비빔밥은 고풍스러운 놋그릇에 신선한 나물과 고기, 계란 노른자 그리고 잘 지어진 쌀밥이 반짝반짝 빛나서 입에 침이 고이는 현상이라고 국어사전이 정의할 법했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나는 현란한 숟가락 놀림으로 비빔장과 모든 재료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입…

내가 기대했던 비빔밥이 아니었다 😯. 내가 아는 맛있는 비빔밥은 깔끔한 고추장 베이스의 비빔장이 매콤하고 달콤한데, 전주 비빔밥은 조금 텁텁한 된장이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비빔장이 내가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EJ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그래도 우리는 시장했던 터라 두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파전과 반찬도 하나 남김없이 완식!

숙소는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한옥 스테이 게스트하우스로 1박을 예약했는데, 참 운치 있었다. 구들방 하나에 샤워와 화장실이 있었고, 다락 같은 Loft 공간이 있어 4인 취침이 가능해 보였다. 드나드는 방문은 문풍지 미닫이 문이었고, 50센치 남짓한 쪽마루가 방과 마당을 나누어 주었다. 주인 아저씨가 재미있는 아빠 캐릭터를 주로 담당하는 탈렌트를 닮았다. 그리고 아침으로 정성이 담긴 흑임자죽과 딸기잼 빵을 주셨는데 참 맛있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로봇 태권브이가 서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번화한 큰길가로 나왔다. 울긋불긋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로 마을 전체가 화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북적대는 한복 대여점을 찾아 EJ는 연한 분홍색 한복을, 나는 청색의 도령 한복을 대여했다. EJ 모르게 여러 장 사진을 찍었다. 예뻐 보였다 😍😍😍. 그렇게 우리는 10원 빵과 오짱 등을 먹으며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듯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꼼꼼히 헤매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보다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한옥마을 외곽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한국 판소리와 서양 클래식 테너의 앙상블을 듣는 호강도 맛보았다. 너무나 다른 두 가지의 소리가 전주에서의 하루를 아쉽게 마감하는 고단한 두 여행자에게는 부드러운 실크 머플러 처럼 온 몸을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어둑해진 저녁인데 EJ가 입고 있는 분홍색 한복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한옥마을이 그다지 크지는 않은데 너무 상업화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아침에 전주행 기차를 같이 탑승했던 20대 젊은 커플들도 여기 어딘가에서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내일은 오전에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구들방에서 잠을 자는 것은 침대에 익숙한 나의 어깨와 궁둥이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그 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구들방 때뿐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Part 5에서 계속

RELATED ARTICLES

Most Popular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