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
아리랑이라고, 그 이름이 눈에 들어온 건 무심히 화면을 넘기다가였다.
2026년 투어 이름: ARIRANG.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은 흘러가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식히고 있던 어느 아침, 그 단어가 스마트폰 위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이미 북미 전 공연이 매진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스탠퍼드, 로스앤젤레스. 나는 공연에 가지 않았다. 가지 못했다기보다 — 그냥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이름은 하루 종일 마음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고개라는 것은 원래 이별의 자리였다
아리랑이라는 말을 처음 배운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소절이었고, 어머니가 설거지하다 무심코 뱉던 첫 마디였고, 명절 할머니 댁 거실에서 텔레비전 너머로 흘러나오던 것이었다. 노래라기보다 공기에 가까웠다. 그 공기 속에서 자랐다.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온 뒤에야 어원을 찾아봤다. 아리(크고 높다)와 랑(고개 령의 변음). 크고 높은 고개. 우리 조상들에게 고개는 이별의 장소였다. 떠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 돌아올지 모르는 길목. 그래서 아리랑은 처음부터 이별이고 기다림이고 한(恨)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것이었다.
유네스코가 2012년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소련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타향에서 부르던 아리랑이 있고,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붙들었던 아리랑이 있다. 그 노래는 한 번도 멀리 가지 않았다. 언제나 고개 위 어딘가에서, 불러줄 사람을 기다려왔다. 이민 온 뒤로 그 사실이 다르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온 빛
3월,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이 있었다.
BTS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첫 무대였다. 광화문 광장,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그 자리. 서울에서 가장 서울다운 곳이 그들을 품었고, 추산 26만 명이 광장과 주변 거리를 가득 채웠다. 2만 2천 명은 황금 티켓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대형 화면 앞에 서서 같은 노래를 들었다.
관객들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정확히는 BTS 앨범 색인 빨강과 흰색으로 물들인 한복이었다. 전통 방식 그대로인 것도 있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도 있었다. 그 장면을 본 건 소셜미디어 클립을 통해서였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미국의 저녁 시간에.
광장이 그날 밤 살아 숨 쉬었다는 표현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읽으면서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광화문 광장이 살아 숨 쉰다는 것 — 그 광장이 그 밤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는 것 — 은 고향을 한참 두고 온 사람에게 다른 방식으로 닿는다. 화면 너머로도.
아리랑이 사막을 건너는 밤
5월 말, BTS는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앨리전트 스타디움. 4일 공연. 나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막 한복판의 전광판 위에 아리랑이라는 글자가 켜지는 장면을 상상한 적이 있다. 밤의 네온 속에서, 한국 민요의 이름이 그 모든 불빛들 사이에 서 있는 장면을.
이 주에 CNN은 “K-pop이 점점 덜 한국적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그룹의 언어가 영어로 옮겨 가고 있고, 한국과 무관한 멤버들로 구성된 그룹들이 세계 곳곳에서 탄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가 뜬 바로 그날, BTS는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 85개 공연을 돌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이름으로, 가장 넓은 곳을 향해.
그 대비가 말해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지면서 희석될수록,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을 들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처음 들었을 때 어딘가에서 이미 들어본 것처럼 느끼는 그 이름을.
이 나라에서 살다 보면 아리랑이 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우연히,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그때마다 그 노래는 뒤를 돌아보게 한다. 고개 너머에 두고 온 것들 쪽으로. 이민은 결국 고개를 하나 넘어온 일이었으니까. 그 고개의 이름이 아리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스타디움이 그 이름을 부르고 있다. 사막이 그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보다 — 그냥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 있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래된 것들이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질 때, 사람은 때때로 그런 무게를 느끼는 것 같다.
아리랑을 들었을 때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어떤 순간, 어떤 목소리로 처음 들으셨는지. hanurl.com에서 나눠주세요. 각자의 아리랑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