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인으로 산다는 것
5월이 오면 저는 매년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습니다. 직장 동료가 복도에서 저를 붙잡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May is Asian American Heritage Month — do you have any plans to celebrate?” 그때 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냥 어색하게 웃고 넘어갔습니다. 아직 제가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몰랐거든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사람으로 살다가,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저는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제 정체성이 아니라 그냥 행정적인 분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다릅니다. AANHPI(Asian American, Native Hawaiian, and Pacific Islander) 헤리티지 먼스가 오면, 저는 이 달이 캘린더 위의 표시가 아니라, 우리 커뮤니티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라는 걸 압니다.
미국에서 쓰이는 명칭들
“Korean American”, “Asian American”, “AANHPI”, 사실 저도 처음엔 이 이름들이 불편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사람으로 자랐는데, 미국에 와서 갑자기 새 이름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한국에 가면 “미국 사람 같다”는 말을 듣고, 미국에 있으면 여전히 “외국인” 취급을 받는 그 어딘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 감각이 오래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느 날 그 공간 자체가 우리의 자리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두 문화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사람, 두 언어로 생각하고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 그게 약점이 아니라 우리만의 자산이라는 것을요.
이번 달 조지아에서는 한인 장학생 다섯 명이 각각 $10,000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이구요. 제가 주목한 것은 금액보다 선발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장학금은 학업 성적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 바깥에서의 봉사 활동, 특히 우리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 기여한 흔적이 선발 기준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이 나라 전체의 일부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제 경험으로는, 그게 진짜 통합(integr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이구요. 우리 문화를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가지고 더 큰 사회로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소속감’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시간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성공’을 이야기할 때 학력, 수입, 직업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20년 넘게 미국에서 살면서 진짜 안정감을 찾은 것은 그런 숫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소속감(소속감)이란 어디서 오는 건지를. 처음에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엔 집을 사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말이죠, 어느 날 아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나는 한국 사람이야, 아니면 미국 사람이야?” 저는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습니다. “둘 다야.” 그 말이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제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소속된 느낌을 받은 때였습니다.
AANHPI 헤리티지 먼스는 그 소속감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여, 우리의 이야기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온 일부라는 것을, 적어도 이 한 달은 사회 전체가 함께 기억하자는 약속이니까요.
달라스에서는 최근 한인 커뮤니티가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역 한인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서로에게 달려가는지, 그것도 우리 커뮤니티의 힘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것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 사람이 되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한국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기를 바랍니다. 언어, 음식, 명절, 예절, 작은 것들이지만 그게 결국 정체성의 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당당히 서는 법도 함께 가르치고 싶습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이 나라에서 네 목소리를 내라”는 말은 덜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월 한 달 동안 전국 곳곳에서 AANHPI 커뮤니티의 이야기가 모입니다. 학교 행사, 지역 모임, 온라인 공간에서요. 우리 한인도 그 이야기의 중요한 한 페이지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아온 시간, 일구어온 것들, 앞으로 남길 것들이 모두 그 페이지 안에 있습니다.
5월이 끝나도 헤리티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매달, 매주, 매일 누군가가 이 나라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처음 오신 분도, 오래 계신 분도, 여기서 태어난 분도 모두 그 과정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나 여기 속해 있구나’를 느낀 순간이 언제였나요? hanurl.com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우리의 이야기가 모일수록, 우리 커뮤니티는 더 단단해진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