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전화를 한국 통신사로 바꾸는 동안(eSIM)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장시간 비행 뒤에 오는 피곤한 몸을 마치 좀비같이 움직이며 동묘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공항버스 좌석은 넓고 뒤로 많이 뉘어져서 EJ는 앉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는 시내로 접어들었고 번쩍이는 빌딩들과 분주히 움직이는 차들이 내가 이제 서울 한 복판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동묘에 마련한 우리의 Airbnb 숙소는 아주 아담한 Studio로 싱크대, 불판 두 개, 세탁기가 있는 부엌 샤워헤드, 세면대와 Toilet이 있는 화장실, 벽장과 냉장고, 그리고 조그마한 소파와 침대가 있다. 우리가 3주 지내기에는 충분한 숙소였다. 지금 시각은 한국시간으로 자정, 어쩌면 시차 적응이 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네시, 그러면 그렇지. 시차 적응이 이렇게 쉽게 될리가 없다. 그래도 지난번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많이 양호한 편이다. 나는 곤히 자고있는 EJ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소파로 나와서 TV를 틀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KBS1, KBS2, MBC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채널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이고 그 반 이상이 홈쇼핑 채널이 아닌가 싶다.
아침 9시. 우리는 대충 짐을 정리한 후 무작정 숙소에서 나왔다. 아침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동묘에 유명한 동태찌개 맛집을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아침 탓인가? 그 맛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 식당 옆집 사장님이 우리를 보고 말씀을 하셨다. 그 식당이나 이 식당이나 맛은 똑같다고. 그러니 먹고 가라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허름한 식당안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동태찌개 둘을 시켰다. 준비된 찌개를 가지고 오신 주인아저씨는 우리에게 그 유명한 식당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허영만의 식객 PD에게 몇백만 원을 지불하고 방송을 탄 후 그 식당에 우리같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그런데 맛은 오히려 본인의 식당이 낳다고. 위생상태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동태찌개는 맛있게 먹었다. 자극적이지 않았고 비린네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한사람당 5천원. 다시 가서 먹고싶은 생각은 없다.
동묘 지하철역을 지나 동대문 쪽으로 향하던 중 빽다방을 발견하고 EJ가 커피 한잔을 하자고 해서 들어갔다. 매장은 협소했지만, 커피와 크림빵이 맛있었다. 특히 가격이 참 착했다. 앞으로 EJ가 커피가 땡길때 마다 빽다방을 고집하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아직 여독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우리의 발걸음만큼은 가볍고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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