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연일 이어지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 소식은 단순히 히말라야 산맥 너머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마치 과거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한 데자뷔를 일으키며, 재외 한인들, 특히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는 분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정부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유튜브 등 26개에 달하는 주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차단한 조치였습니다. 정부는 이들 플랫폼이 현지 법규 등록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명백한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활발하게 소통하고 세상을 바라보던 네팔의 젊은 세대, 특히 13세에서 28세 사이의 Z세대에게 이러한 조치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는 단순히 소셜 미디어 차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구조적인 문제, 즉 정치적 부패와 청년 실업이라는 뿌리 깊은 불만 위에 터져 나온 거대한 폭발이었습니다. 네팔의 청년들은 2024년 기준 20.8%에 달하는 높은 청년 실업률 속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정치인 자녀들인 이른바 ‘네포 키즈(Nepo Kids)’들은 자신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소셜 미디어에 과시하며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는 과거 정경유착의 폐해를 경험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 보이며, ‘공정’이라는 가치가 무너진 사회에 대한 공통된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시위는 순식간에 격화되어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로 번졌습니다. 시위대는 경찰의 야간 통행금지령을 무시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등 정부 건물에 불을 질렀습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은 물론 실탄까지 발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고, 그 결과 최소 22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모습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우리 국민들이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며 겪었던 아픔을 떠올리게 합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폭력적인 탄압에 부딪히면서 생긴 비극적인 현실은, 자유와 정의를 외쳤던 우리의 과거와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이번 시위로 인해 결국 네팔의 KP 샤르마 올리 총리가 사임했고, 정부는 소셜 미디어 차단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는 여전히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군 병력까지 투입되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네팔 정부는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부패한 기득권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단기간에 해소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한국 사회는 과거 독재와 부패에 맞서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과 상처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불공정과 특권의식, 만연한 부패는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네팔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바로 우리가 과거에 외쳤던,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싸우고 있는 외침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지하면서도, 더 이상의 폭력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평화적인 시위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폭력과 파괴는 오히려 명분을 훼손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네팔 국민들이 평화를 향한 용기와 지혜를 잃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랬듯이, 이들이 역사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내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투쟁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네팔의 젊은 세대가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따뜻한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