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라이프악마를 보았다

악마를 보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한국 소식을 접하다 보면 유독 마음이 무거운 날이 있습니다. 시차 때문에 이곳의 조용한 밤에 한국의 떠들썩한 뉴스들을 마주하곤 하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이 드네요. 아마 우리 한얼 커뮤니티 회원님들도 이미 접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생후 4개월 영아 학대 사건, 그 가여운 아이의 이름은 ‘해든이’였다고 합니다. ‘해처럼 밝게 든다’는 뜻이었을까요. 그 예쁜 이름이 제대로 불려보기도 전에, 아이는 너무나 차갑고 무서운 곳으로 홀로 떠나버렸습니다.

저도 어느덧 대학생이 된 두 아이를 둔 40대 중반의 아버지입니다. 이제는 제 키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이번 사건을 접하며 녀석들이 제 손바닥보다도 작았던 그 시절이 자꾸만 떠올라 온종일 마음이 시렸습니다.

특히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의 기억이 선합니다. 3개월, 4개월 무렵의 아이는 정말 얼마나 작고 연약한가요. 고개도 겨우 가누기 시작할 때고, 눈을 맞추며 배냇짓 한 번 해주면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던 시절이지요. 우리 부부는 그때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는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아기를 안다가 목이 꺾일까 봐 숨을 죽이고, 잠든 아이의 코에 손을 대보며 숨은 잘 쉬는지 확인하던 밤들이 떠오릅니다. 온 집안 구석구석에 보호대를 붙이고, 기저귀 하나 가는 것도 서툴러 땀을 뻘뻘 흘리던 그 서툰 시간조차, 아이가 주는 그 맑은 눈망울 앞에서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축복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여리고 고운 해든이에게,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부모가 가한 짓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사건을 접한 현장의 구조대원들, 아이를 처음 진찰했던 응급실 의사, 그리고 사건을 맡은 검사와 재판장까지도 해든이가 받은 폭행의 참혹함에 분노를 넘어선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법과 원칙을 다루며 수많은 사건을 봐왔을 그분들조차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 만큼, 해든이의 몸에 남겨진 23곳의 골절과 내장 파열의 흔적들은 차마 인간이 한 짓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잔인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이를 그토록 증오하고 감당하기 힘들었다면 차라리 입양이라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갖지 못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간절히 바랐을 그 소중한 생명을, 왜 그토록 처참하게 짓밟아야 했을까요. 부모로서 자격이 없음을 느꼈을 때, 아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손을 놓아줄 용기는 없었던 걸까요.

더구나 그 집에는 해든이의 형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어린 영혼이 부모의 끔찍한 범죄를 곁에서 고스란히 목격하며 느꼈을 공포는 또 어땠을까요. 아이가 받았을 정서적 살인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친부라는 사람은 방관을 넘어 어쩌면 공범이나 다름없는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아기가 사경을 헤매는 순간에도 성매매 업소를 찾았다는 그 파렴치한 행보를 들으며, 저는 같은 남자로서, 그리고 같은 아버지로서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오는 11일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다룬다는 예고가 나왔더군요. 평소라면 우리 사회의 진실을 알기 위해 꼭 챙겨봤겠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번만큼은 더 이상 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화면 속에 비칠 해든이의 고통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요. 부모라는 이름으로 그 작은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어른들의 무책임함에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버겁습니다. 아마 우리 한얼의 부모님들도 비슷한 마음이시겠지요.

우리 미주 한인들은 타국에서 아이들 키우느라 참 치열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만큼은 상처받지 않고 밝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버텨온 시간들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이번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고 마치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 주변에 소외되거나 고통받는 작은 생명은 없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밤은 대학생이 되어 이제는 훌쩍 커버린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안부 전화 한 통 넣어보려 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너희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 짧은 어휘력으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라고, 그저 살아있어 주어서,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네요.

해든아, 그곳에선 부디 아프지 말고, 누구보다 밝은 해처럼 웃으며 지내렴. 이 못난 어른들이 정말, 정말 미안하다.

RELATED ARTICLES

Most Popu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