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의 폭삭 속았수다가 한국을 넘어 세계 많은 나라에서 사랑을 받으며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고 한다. 극중 순애와 그의 엄마 사이에 오고가는 애틋한 사랑은 나같이 눈물없는 인간도 흔들어 버릴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관식이의 순애를 향한 일편단심 사랑 역시 내 깊은 속에 숨어있던 감성을 깨워 놓았다.
난 처음에 한국 드라마가 항상 그러했듯이 순애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드라마 중 후반을 가면서 아빠 관식이의 자식사랑 이야기에 내가 왜 그렇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지. 나와 내 아버지 사이에 그 어떤 에피소드가 드라마의 것과 겹치지 않는데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 정말로 작가와 드라마 감독, 그리고 연기자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미스터리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순애가 아닌 아빠 관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아빠라는 단어가 매우 어색하고 불편하다. 내 아이들은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나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내가 나의 부(父)를 아빠라고 불러본적이 없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배움이 많지 않았고, 다정한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으며, 성격이 매우 까다로우셨다. 엄마와 부부싸움 중에는 감정 조절을 못하시고, 술을 너무 좋아하셨다. 술은 아버지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고, 유일한 휴식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항상 존중해 드렸지만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무섭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니셨지만 일요일에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기는 불편한 분이셨다. 아마 학씨 부상길과 오히려 더 교차되는 부분이 많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분주한 순간들 속에서 나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혹시 장례식 때 눈물이 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나는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아들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궁금했다. 걱정했던 대로 장례식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버지가 더 이상 안 계신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가까운 친구의 아버님 장례식에서 그 친구가 나와 똑같은 걱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혼자는 아니었다.
학씨 부상길이도, 물론 절대적으로 좋은 남편이나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아빠’라는 타이틀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뇌물)은 성실히, 놀랍게도 가족 모르게 소리 없이 뒤에서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뒤에서 하는 것이 더 쉬웠을 수 있다. 왜? 관식이가 항상 금명이에게 하는 “아빠는 너를 믿는다. 너는 무엇이든 다 잘해. 내가 항상 너의 안전망이 되어줄게. 수틀리면 언제든지 아빠에게 와” 라는 말을 부상길 같은 아버지들은 도저히 할 용기가 없다.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아버지가 되어 줄 수 있는 안전망이 이 세상에 비해 그다지 견고하지 않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혹시 내 자식이 너무 나약하게 자라는 것은 아닌지, 자신보다는 강인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그런 말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식을 키우는데 어느 한쪽이 100% 맞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자식들에게 존중과 존경을 받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자식에게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내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내 아이들도 벌써 나보다 자기 엄마를 더 편하게 대하는 것은 아마 내가 부상길 처럼 무뚝뚝하고 표현을 못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고 칭찬보다는 쓴소리로 삶의 무거움을 가르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가끔 아이들이나 부인이 나를 섭섭하게 할때 “나 덕분에 쌀밥 먹고 사는줄 알아”라는 맥락의 생각이 문득 난다. 다행히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만큼 인격수양이 덜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Netflix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오징어 게임’ 이후 또다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이 초현실적인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이 드라마는 그와 반대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나 자신이 한번쯤 겪었거나 가까운 사람이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한 가지 제작진에게 고마운 점은 관식이라는 남편이자 아빠 캐릭터를 소개해준 것이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남편이나 아빠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1차원적인 캐릭터로 가부장적이거나 다소 덜떨어진 공처가 정도에 불과했는데, 일편단심 무쇠 K-아빠 관식의 등장은 새로우면서도 “어, 저건 나랑 비슷한데”라는 장면이 있어 공감도가 높았다.
아버지들, 아들과 딸들에게 오늘 저녁 이렇게 말해줍서, “아덜 똘 나 이녁 소못 소랑헴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