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주4.5일제를 시작했습니다. 직장이 새벽에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렴을 깨뜨리는 이 사업. 어떻게 생각해세요?
우리 아빠는 주말에 쉬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는 이미 뭔가를 하고 있었어요. 식당이면 재료를 다듬고 있었고, 잠깐 다른 일을 하던 시기엔 서류를 보고 있었어요. 저한테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어요. 그냥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미국에서 자란 저는 Korean-American 친구들 사이에서 이 패턴이 얼마나 공통적인지 나중에 알았어요. 부모님이 쉬는 걸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피곤하다는 말을 거의 못 들었다는 이야기. 그 노동 윤리가 사랑의 언어였다는 것도요.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가족을 위한 헌신이었고,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저는 어느새 그 기준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인지 직장에 들어갔을 때, 저는 일을 빨리 끝내는 것, 더 많이 하는 것, 먼저 와서 늦게 나가는 것이 좋은 직원이 되는 길이라고 믿었어요. 심지어 그게 자랑스럽기도 했고요. 빨리빨리. 그 단어를 한국어로 배운 건 어릴 때였지만, 그게 몸에 밴 건 미국에서 자라면서였어요.
그런데 올해 초, 한국에서 뉴스가 들려왔어요. 주4.5일제 시범 사업이 시작됐다고요.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2026년 1월에 공식 출범시킨 정책이에요.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뭔가 부자연 스럽기도 하고. 그 복잡한 감정을 오늘 한번 풀어보려고 해요.
우리가 물려받은 것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전쟁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나라. 그 뒤에 있었던 건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집단적 노동이었어요. 한국은 지금도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 시간을 기록하는 나라 중 하나예요.
그리고 그 문화는 이민 가방에 담겨 미국으로 왔어요. 부모님 세대 1세대 분들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건 바로 그 방식이었거든요. 언어도 불편하고, 차별도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이민 1세대의 무기였어요.
우리 2세 한인들은 그 무기를 물려받았어요. 하지만 조금 다른 형태로요. 부모님처럼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맞는 거라는 믿음으로요. 열심히 하면 된다. 더 하면 된다. 일 못하는 것보다 일 너무 많이 하는 게 낫다. 이런 기준이 제 안에 조용히 자리 잡아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 기준 때문에 지쳐본 적이 있어요. Burnout이라는 단어를 처음 실감했던 건 30대 초반이었어요. 아이도 생겼고, 일도 많았고,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쉬는 게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아직 더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았어요. 2026년 전 세계 burnout 비율이 75%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 저는 그 숫자가 낯설지 않았어요.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8% 더 높다는 것도요. 그 숫자에 저도 들어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회사가 금요일 오후를 반환
2026년 1월, 한국 정부는 주4.5일제 지원 사업을 공식 시작했어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이 정책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돼요.
하나는 ‘근무시간 단축형’이에요. 임금 삭감 없이 주당 총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에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하루 8시간 일하고, 금요일엔 오전 4시간만 일하는 거예요. 총 주당 36시간. 경기도 시범 사업이 대표적이고, 일부 IT, 디지털 관련 기업들이 이 방식을 선택했어요.
다른 하나는 ‘근무시간 유지형’이에요. 법정 근로 시간인 주 40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압축 근무나 격주 휴무를 통해 금요일 오후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에요. SK텔레콤의 ‘해피 프라이데이’가 이 방식인데, 격주로 금요일에 쉬는 거예요. 농심켈로그는 한 달에 두 번 금요일 오전까지만 일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 정책이 나온 배경이 흥미로워요. 단순히 ‘쉬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 첫째는 저출생 문제예요. 긴 노동시간을 줄여서 육아와 돌봄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거예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 중 하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꺼낸 카드 중 하나예요.
- 둘째는 인재 확보예요. MZ세대 중심으로 work-life balance에 대한 기대가 달라졌고, 기업들이 좋은 인재를 유치하려면 이제 급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 셋째는 ‘가짜 노동’ 문제예요. 자리만 지키는 무의미한 시간을 줄이고, 한정된 시간 안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경기도 시범 사업 결과를 보면 숫자가 인상적이에요. 생산성은 2.1% 올랐고, 채용 비율은 72% 증가했고, 이직률은 5.4% 떨어졌어요. 10,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70% 이상의 직장인이 주4.5일제를 지지한다고 답했어요.
솔직히 이 수치들을 보면서 저도 한번 생각해봤어요. 내가 만약 금요일 오후에 아이를 픽업하고, 병원도 연차 쓰지 않고 갈 수 있고, 그냥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요. 빨리빨리로 자란 저도 그 금요일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의 금요일 오후
근데 여기서 저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정책이 좋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 금요일이 모두의 금요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IT 회사나 사무직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분, 의료 현장에서 교대 근무하는 간호사, 소규모 점포를 홀로 운영하는 분들한테 ‘금요일 오후를 돌려준다’는 말이 얼마나 실감 나게 들릴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 많은 분들이 그랬어요. 식당, 세탁소, 네일샵. 쉬는 날이 없는 게 아니라, 쉬는 날이 있으면 안 되는 구조 속에서 일하셨어요.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자식들을 키우셨어요. 그분들에게 주4.5일제 논의는 그림의 떡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이게 바로 이 정책에서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에요. 혜택을 받는 사람들과 못 받는 사람들 사이의 양극화 문제예요. IT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빠르게 도입하는데, 중소기업이나 서비스업 현장은 그 격차만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거예요. 대체 인력도 없고, 업무 공백을 감당할 여유도 없는 곳에서 ‘우리도 해야 하나’라는 압박만 늘어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시간이 줄었다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잖아요. 기존 업무량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시간만 줄어들면, 결국 그 시간 안에 더 빡빡하게 일하거나 집에 일을 가져가게 되는 거예요. 겉으로는 4.5일제인데 속으로는 여전히 5일치 일을 하는 거예요. 이건 빨리빨리 문화의 다른 버전일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아직 이 질문에 답을 못 내리고 있어요.
빨리빨리로 자란 저에게, 한국이 스스로 그 고정관렴을 해체하려 한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신호예요.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 변화가 진짜 변화가 되려면, 정책 발표로 끝나지 않고 일하는 방식 전체가 함께 달라져야 해요. 모든 업종, 모든 직종이 이 대화 안에 있어야 하고, 양극화 문제도 같이 풀어야 해요.
우리 2세 한인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부모님이 물려준 노동 윤리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줄 건지, 아니면 이제는 다른 걸 가르칠 수 있는 시대가 된 건지. 저는 아직 그 경계를 찾고 있어요. hanurl.com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건, 혼자 고민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였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4.5일제가 반갑다는 분도,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분도 댓글로 이야기해 주세요. 부모님이 일하시던 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그 방식을 지금도 따르고 있다는 분도, 아니면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분도요. 정답은 없지만, 같이 이야기하면 뭔가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