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 한국 방문. 미국에 온 게 1990년대 중반이었다. 대학원 공부를 위해서였고, 그게 이렇게 오래될 줄은 몰랐다. 그 사이에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고, 이사를 두 번 했고, 직장에서 Intern으로 우리 팀으로 왔던 녀석이 내 매니저가 됐다. 지금 사는 동네는 여름에도 조용하고, 이웃집과 말을 나눌 기회가 별로 없다. 이곳이 삶이 됐지만, 여름이 시작될 즈음이면 언제부턴가 한국이 당긴다. 정확히 무엇이 당기는 건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움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단순한 여행 충동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더 오래된 것이다. 오래 묵은 사진첩처럼.
이번 초여름, 나는 갑자기 인천행 비행기 표를 구매해야 했다. Korean Air 직항으로 왕복 $1,500 정도였다. 미국 시민권자는 올해 12월 31일까지 K-ETA 없이도 입국이 가능하다. 입국 신고도 이제는 e-Arrival Card로 미리 온라인으로 처리했다. 비행기 출발 3일 전까지 작성하면 되니 절차가 예전보다 훨씬 간단해졌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한국행 비행기표를 갑자기 사게 된 이유가 생기는 바람에 EJ와 같이 갈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혼자 한국 땅을 밟는 건 총각 시절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다.
아쉽지만 어쩔수 없었다.
서울이 잘 왔다고 한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공기가 달랐다.
한국의 여름은 무겁다. 습하고 뜨겁고, 피부에 닿는 순간 감각 전체가 다시 켜지는 것 같다. 터미널을 나서자 저 앞에 택시들이 줄 서 있었다. 공항버스 정류장 쪽에서 여행 가방을 끄는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이 광경이 낯설지 않았다. 어느 여름에도 인천공항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바쁘고, 소란스럽고, 어딘가에서 컵라면 냄새가 났다.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한강이 보였다. 한강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작년에 봤던 그 한강. 물은 흐르고 있지만 강은 그대로였다. 넓고 무심하고, 다리들 사이에서 조용히 흘렀다. 큰 것들은 이렇게 변하지 않는다. 다행이다라고 속으로 말했다.
숙소는 홍대 근처로 잡았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거리를 혼자 걸었다. 음악 소리가 골목 끝까지 따라왔다. 어느 건물 1층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앞에 맥주 캔을 손에 든 채로 서서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의 밤은 조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 소음이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날 밤 오래 걸었다. 홍대에서 마포쪽으로, 이유 없이 발이 끌리는 대로 걸었다. 어느 좁은 분식집 앞에서 멈췄다. 두 평도 안 되는 가게였다. 떡볶이 순대 콤보 한 접시 먹었다. 기름지고 달고 매웠다. 미국에서 먹는 것들과 무언가가 달랐다. 정확히 뭐가 다른지 말하기 어렵지만, 달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경복궁 근처 돌담길도 걸었다.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래된 돌담이 아침 햇살을 받아 주황빛과 황토빛 사이 어딘가를 띠었다. 담장이 오랜 친구처럼 그냥 거기 서 있었다.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미국에서 쌓인 무언가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게가, 조금씩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오래됐다, 이런 기분이. 마지막으로 이랬던 게. 서울이 잘 왔다고 하는것 같다.
놓쳐왔던 것들이 거기 있었다
시장 골목에 들어섰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골목이 왜 이렇게 정겨운지.
좁고 낮은 천장 아래, 반찬 가게와 생선 가게와 국밥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생선 냄새와 국물 냄새가 뒤섞인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든 할머니가 지나갔고, 그 옆에 플라스틱 의자 세 개를 내놓은 작은 해장국집이 있었다. 뭔가가 안으로 당겼다.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이미 문을 밀고 들어가 있었다.
점심은 가정식 백반집에서 먹었다.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 반찬이 여섯 가지. 메뉴판이 없었다. 오늘 이 집에서 끓인 것이 오늘 내 점심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내가 서서히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이거라는 걸, 이 식탁 앞에 앉아서야 깨달았다. 선택지가 없는 식사. 선택을 내려놓는 편안함. 그냥 오늘 것을 먹는 일.
7월 하순이 되면 충청남도 보령에서 머드 축제가 시작된다는 걸 숙소에서 알게 됐다.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진흙 수영장에서 뒹구는 사람들, 온몸이 진흙으로 뒤범벅된 채 웃는 아이들. 더럽고, 뜨겁고, 시끄럽고.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잊어버린 게 있다면, 이유 없이 그냥 뛰어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체면 없는 여름.
날이 저물어 한강공원으로 갔다. 강변에는 돗자리를 깐 가족들, 자전거를 세우고 서 있는 커플들, 치킨과 맥주를 앞에 놓고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강이 그 모든 것을 말없이 흘려보냈다.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EJ에게 카독을 했다. 미국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답이 없다.
강 건너편 아파트들의 불빛이 물 위에서 흔들렸다. 그곳에는 누가 무엇을 하다가 오늘의 끝을 마무리하는지 궁금하다.
돌아오면서야 알게 된 것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다봤다. 다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은 순조롭게 마쳤다.
한국이 구름 아래로 멀어지고 있었다. 항상 이 순간이 이상하다. 떠나기 전에는 가고 싶었고, 가서는 좋았고, 돌아오면서는 또 그리운 것. 이민자로 산다는 게 이 감정의 반복인 것 같다. 한쪽 발이 항상 어딘가 다른 곳에 닿아 있는 느낌. 그리고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이번 여름이 다시 알려줬다.
비행기 표 한 장이 그렇게 많은 것들을 돌려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천 공항의 습한 공기도, 경복궁 돌담이 아침 햇살을 받는 그 색깔도, 분식집 떡볶이의 맛도, 한강 옆에서 혼자 말없이 보낸 저녁 두 시간도. 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굳이 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가면 알게 된다.
hanurl.com에서 여행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혼자 들고 있는 기억보다 누군가와 나누는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느꼈어요. 이번 여름 한국에 다녀오신 분들, 아직 망설이고 계신 분들, 커뮤니티에서 함께 이야기 나눠요.
혹시 여러분도 이런 순간이 있으셨나요. 어느 골목에서, 어떤 식당 앞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무언가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 그 감각이 찾아왔는지. 댓글로 그 기억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