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차 문이 열리고, 처음 나오는 건 등산화 소리다. 딱딱하고 단단한, 발걸음마다 지면을 확인하는 소리. 그다음은 등산 스틱이다. 카본 소재, 조정 가능한 손잡이, 끝에 고무 캡. 트렁크에서 꺼내 길이를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30초다. 서두르지 않는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산행의 일부다.
주변을 보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밝은 빨강, 선명한 파랑, 형광 노랑. 고어텍스 재킷이 이른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쓴 아주머니, UV 차단 장갑을 낀 아저씨. 배낭은 묵직하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오늘 코스는 왕복 4킬로미터다. 두 시간이면 충분한 트레일. 그런데 이들의 준비를 보고 있으면, 지금 히말라야로 향하는 건지 잠깐 착각하게 된다. 그 착각이 틀리지 않은 이유를 산은 알고 있을 것이다. 산에게는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도 그 무리 안에 있다. 등산화 끈을 조이면서,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생각한다. 아버지의 일요일 아침과는 확연히 다른 이 습관, 마치 종교와 습사하다. 등산화 끈 조이는 소리, 배낭 지퍼 여닫는 소리. 그건 당연한 아침의 소리였다. 특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완전무장
등산복을 제대로 갖춰 입는 것은 한국인에게 일종의 예의인가 보다.
산을 가볍게 보지 않겠다는 선언인듯.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인이 등산 장비에 쓴 돈은 약 23억 달러였다. 그해 영화 관람비나 화장품 구입비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당연한 것을 숫자로 확인한 느낌이었다.
The North Face, Columbia, Black Yak. 브랜드마다 기능이 다르고, 어느 시즌에 어떤 재킷이 맞는지 등산 동호회에서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다. 트레킹 폴은 무릎 보호와 균형을 위해 필수다. 미끄럼 방지 등산화는 기본이다. 챙 넓은 모자와 UV 차단 장갑은 피부와 시야를 위해서다. 이것들 없이 산에 간다는 건, 음식 없이 저녁 자리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실례다.
트레일 초입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이 있다.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미국인 하이커가 물병 하나 들고 가볍게 올라가고 있다. 그 옆으로 전신 기어를 갖춘 한국인 아저씨가 스틱을 짚으며 천천히 오른다. 둘 다 같은 산을 가고 있다. 하지만 그 태도는 전혀 다른 무게를 담고 있다. 어느 쪽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쪽이 더 정중한가의 문제다.
완전무장의 배낭이 어깨를 눌러 앞으로 나아가자고 했다. 장갑 낀 손으로 스틱을 잡고 첫 경사를 오르면서 생각했다. 이 준비가 산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 준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인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산에서 제대로 쉴 수 있다.
정상에서 우리가 꺼내는 것들
정상이 먼저 기다리는 게 아니다. 배낭 안에 든 것들이 먼저 정상을 기다리고 있다.
적당한 바위를 찾아 배낭을 내려놓는다. 지퍼를 열면 질서 정연하게 쌓인 것들이 나온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김밥, 뚜껑이 단단한 반찬 용기, 삶은 계란 두세 개. 한국에서는 미니 부탄가스 버너까지 꺼낸다. 라면 봉지가 따라 나온다. 해발 600미터에서 라면이 끓기 시작한다. 그 냄새가 트레일 위로 퍼진다.
처음 한국 산악인 그룹과 함께 산에 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놀라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이 사람들이 저 무게를 들고 정상까지 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 운동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옆에서 라면을 끓이던 아저씨가 말없이 젓가락을 내밀었다. “먹어봐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거절하는 것이 더 이상한 분위기였다. 라면 한 젓가락을 받아 먹었다. 같은 라면인데 다른 맛이었다. 공기가 달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이 뜨거워졌다.
막걸리도 정상에서 열린다. 산 아래에서 마시는 막걸리와 같은 술이지만, 맛이 다르다고 모두가 말한다. 지쳐야 제맛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막걸리가 수고했다고 했다. 한 모금 마시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올라오는 내내 무거웠던 발이 기억나지 않았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이 장면이야말로 한국의 등산이 운동이 아니라는 증거다. 운동이라면 이렇게 먹지 않는다. 이것은 의례다. 함께 올라온 사람들과 나누는, 말이 필요 없는 의례.
소나무가 알아봤다
산에는 소나무가 많다.
미국의 트레일에도 소나무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산에도, 버지니아의 능선에도. 한국에서 건너온 분들이 그 소나무 앞에서 잠깐 멈추는 걸 본 적이 있다. 길게 멈추는 것이 아니다. 한 박자. 그다음 걷는다. 멈춘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NPR이 보도한 내용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Griffith Park, 주말 아침이면 한인들이 트레일을 채운다는 이야기. 그 한인들이 소나무 앞에서 한국의 명절 이야기를 한다고. 설날 아침 솔잎 냄새가 기억난다고. 어머니가 해주시던 떡이 생각난다고. 소나무가 알아봤다. 그 냄새가, 그 생김새가, 어딘가 다른 산의 기억을 불러왔다.
이민자에게 산은 특별한 장소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을 묻지 않는다. 언제 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짚고, 오르면 된다. 그것만으로 여기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 내려온다. 한국의 산이 주었던 그 느낌이 미국의 산에도 있다. 정확히 같지는 않다. 그래도 충분하다.
2세, 3세 한인들도 이 길을 오른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처음 왔다가, 혼자 오고, 다시 자녀를 데리고 온다. 왜 등산을 하냐고 물으면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냥 좋아서. 어릴 때부터 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통은 이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산은 조용하다
올라올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고, 말이 줄어든다. 정상에서 나눴던 음식, 막걸리 한 잔, 처음 보는 사람의 젓가락이 기억 안쪽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다. 배낭은 가벼워졌다. 가져온 것들을 두고 왔으니까.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다시 차 문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등산화를 벗고, 스틱을 접고, 트렁크를 닫는다. 그것으로 끝이다. 다음 주말에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것이 주말이 하는 일이다.
한국인이 산에 오르는 방식을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저 준비가, 저 무게가, 저 정상에서 꺼내는 것들이 사실은 산을 위한 게 아닐 수 있다. 잠깐 내려놓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일주일치의 무게를 배낭에 담아 올라가고, 정상에서 풀어놓고, 빈 손으로 내려오는 것. 그것이 한국인의 등산일 수 있다.
여러분의 이야기도 hanurl.com에서 나눌 수 있다. 등산 모임을 찾는 분들, 같이 갈 사람이 없는 분들, 오랫동안 산을 안 갔다가 다시 가고 싶어진 분들. 이런 이야기들이 모이면 주차장 소나무 그늘 아래 자리가 하나 생긴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그런 산이 있으신가요. 이름은 달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계기로 처음 올라갔는지, 아니면 정상에서 나눠 먹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지, 댓글로 그 기억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